제가 지금 쓰는 글은 제 아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데 행여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을 쓰려니 솔직히 조심스럽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신학대학원 다닐 때 같은 써클에서 함께 교제했던 목사님이 이스라엘 선교사로 가있습니다. 선교 편지가 한 번씩 오는데 이스라엘 지역에 계속되는 자살 폭탄 테러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 버스 폭탄 테러 때는 동료 선교사님 따님이 죽었고 얼마 전에 테러 당한 상점은 선교사님이 한 번씩 가서 전도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바로 가까이에서 계속되니 선교사님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가 겁이 나고 고물 중고차라도 급히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가슴을 졸이며 살고 있을 선교사님과 그 가족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래서 차를 사게 되면 얼마나 드는지 물었더니 8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바로 동원할 수 있는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말입니다. 11월 8일인가 타는 300만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것 보내드리자고 했습니다. 우리야 여기서 배 안 고프고 위험한 일 없이 잘 지내는데 입장을 바꿔놓고 한 번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처자식을 위험한 지경에 매일 내어놓아야 하는 그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그러면 아이는 무슨 돈으로 낳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11월말에 출산하게 될 셋째 아이를 품고 있어서 아내의 배는 지금 터질 것처럼 산만한 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낳는데 얼마나 드느냐고 했더니 수술해서(첫째, 둘째 모두 수술해서 낳았기에 셋째도 어쩔 수 없이 수술해야 합니다) 낳고 필요한 용품을 사고 이래저래 하면 1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200만원을 보내드리면 또 어떤 손길을 통해서든 600만원을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도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11월 8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요즘 제 마음은 참 기쁜데 가슴에는 뭔가 아린 것이 커다랗게 하나 뭉쳐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찡하게 나려고 합니다. 제 아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집안 살림을 살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콜라 한 병을 사더라도 동네에서 사는 것이 싼지 할인점에서 사는 것인 싼지 작은 계산기를 가지고 가서 꼼꼼히 따져서 더 싸다면 무거운 것을 마다하지 않고 짊어지고 옵니다.
두 딸아이들도 남들 보내는 학원에 잘 못 보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싸다는 동네 문화 센터의 미술 학원에 보내고 있는 정도입니다. 두 아이는 그것이 좋은지 밤낮으로 쉴새없이 그림을 그려댑니다. 피아노도 사달라고 했지만 중고 피아노라도 비싸서 생각 중입니다. 그 300만원도 아내가 몇년 동안 한 달에 몇 만원씩 조금씩 모았던 돈 같습니다.
아직까지 제 기억에 남는 아내에 대한 두 가지의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는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 비오는 날 다른 동네 쓰레기 모인 곳에서 누군가가 버린 비에 젖은 보행기를 주웠을 때 그것을 쳐들고 너무 기뻐했던 아내의 모습이고 또 한 가지는 제가 교육 전도사로 생활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두 동생을 데리고 있을 때 돈이 다 떨어져 꼬마 아이의 돼지 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 두부를 사왔을 때입니다.
이런 제 아내의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교사님에게 헌금하기로 했을 때 마음은 기뻤지만 제 가슴은 너무나도 아팠고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제 생각에 따라준 아내가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이 정도니 제가 아내 하나는 잘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가 제 생각에 동의하면서 꺼낸 말이 더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올해 들어서 제가 일을 저질렀던 일들입니다. 어려운 누군가에게 장학금으로 50만원을 준 일, 누가 아파 수술한다고 30만원인가 주었던 일, 목사 사모인 친척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20만원을 주었던 일, 그리고 200만원을 헌금하기로 한 바로 직전 저지른 70여 만원도 있습니다.
70여 만원은 지금 보류중입니다. 어떤 영어 책을 파는 회사에서 3개월 동안의 전화 판매 연수를 받은 어떤 자매였는데 그 훈련을 끝내고 처음 전화하는 것인데 처음 책을 하나 계약해야 정식 사원증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3개월이나 6개월 정도 봐주다가 끊으면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지금 영어 책은 필요하지도 않고 있다고 해도 볼 시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의 목소리가 참 애처롭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이제 곧 울듯한 절박한 목소리였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청년 실업이나 취업경쟁률에 대해서 보았던 후라 제 마음에도 이 자매가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영어 책을 2년 동안(그것도 기본이 3년인데 연수생에게는 2년 계약도 가능하다고 해서) 70여 만원이 드는 것을 계약하고 말았습니다. 제 마음은 오직 하나,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그 자매가 힘과 용기를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은 다 말씀은 못 드리지만 그후 그 자매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계속 아내가 전화해도 전혀 전화를 안 받았었고 소비자 규정상 7일 이내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자매가 조금만 더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아내도 취소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 자매보다 회사만 좋은 일 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영어 책이 아니면 아이들 책으로 바꿔도 된다고 했는데 보내준 유인물에는 쓸만한 책도 없었고 우리 형편으로는 너무 버거운 것이라고 해서 취소 요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제가 카드로 계약하자마자 바로 사원증이 나왔다고 기뻐했던 그 자매에게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입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은 했는데 오히려 그 자매에게 실망과 상처를 준 것 같아 제가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마저 제 마음을 알고 처음에 동의해 준 아내가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이런 제 아내가 곧 아이를 출산합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자매와 그 선교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신학대학원 다닐 때 같은 써클에서 함께 교제했던 목사님이 이스라엘 선교사로 가있습니다. 선교 편지가 한 번씩 오는데 이스라엘 지역에 계속되는 자살 폭탄 테러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 버스 폭탄 테러 때는 동료 선교사님 따님이 죽었고 얼마 전에 테러 당한 상점은 선교사님이 한 번씩 가서 전도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바로 가까이에서 계속되니 선교사님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가 겁이 나고 고물 중고차라도 급히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가슴을 졸이며 살고 있을 선교사님과 그 가족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래서 차를 사게 되면 얼마나 드는지 물었더니 8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바로 동원할 수 있는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말입니다. 11월 8일인가 타는 300만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것 보내드리자고 했습니다. 우리야 여기서 배 안 고프고 위험한 일 없이 잘 지내는데 입장을 바꿔놓고 한 번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처자식을 위험한 지경에 매일 내어놓아야 하는 그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그러면 아이는 무슨 돈으로 낳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11월말에 출산하게 될 셋째 아이를 품고 있어서 아내의 배는 지금 터질 것처럼 산만한 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낳는데 얼마나 드느냐고 했더니 수술해서(첫째, 둘째 모두 수술해서 낳았기에 셋째도 어쩔 수 없이 수술해야 합니다) 낳고 필요한 용품을 사고 이래저래 하면 1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200만원을 보내드리면 또 어떤 손길을 통해서든 600만원을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도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11월 8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요즘 제 마음은 참 기쁜데 가슴에는 뭔가 아린 것이 커다랗게 하나 뭉쳐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찡하게 나려고 합니다. 제 아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집안 살림을 살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콜라 한 병을 사더라도 동네에서 사는 것이 싼지 할인점에서 사는 것인 싼지 작은 계산기를 가지고 가서 꼼꼼히 따져서 더 싸다면 무거운 것을 마다하지 않고 짊어지고 옵니다.
두 딸아이들도 남들 보내는 학원에 잘 못 보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싸다는 동네 문화 센터의 미술 학원에 보내고 있는 정도입니다. 두 아이는 그것이 좋은지 밤낮으로 쉴새없이 그림을 그려댑니다. 피아노도 사달라고 했지만 중고 피아노라도 비싸서 생각 중입니다. 그 300만원도 아내가 몇년 동안 한 달에 몇 만원씩 조금씩 모았던 돈 같습니다.
아직까지 제 기억에 남는 아내에 대한 두 가지의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는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 비오는 날 다른 동네 쓰레기 모인 곳에서 누군가가 버린 비에 젖은 보행기를 주웠을 때 그것을 쳐들고 너무 기뻐했던 아내의 모습이고 또 한 가지는 제가 교육 전도사로 생활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두 동생을 데리고 있을 때 돈이 다 떨어져 꼬마 아이의 돼지 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 두부를 사왔을 때입니다.
이런 제 아내의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교사님에게 헌금하기로 했을 때 마음은 기뻤지만 제 가슴은 너무나도 아팠고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제 생각에 따라준 아내가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이 정도니 제가 아내 하나는 잘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가 제 생각에 동의하면서 꺼낸 말이 더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올해 들어서 제가 일을 저질렀던 일들입니다. 어려운 누군가에게 장학금으로 50만원을 준 일, 누가 아파 수술한다고 30만원인가 주었던 일, 목사 사모인 친척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20만원을 주었던 일, 그리고 200만원을 헌금하기로 한 바로 직전 저지른 70여 만원도 있습니다.
70여 만원은 지금 보류중입니다. 어떤 영어 책을 파는 회사에서 3개월 동안의 전화 판매 연수를 받은 어떤 자매였는데 그 훈련을 끝내고 처음 전화하는 것인데 처음 책을 하나 계약해야 정식 사원증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3개월이나 6개월 정도 봐주다가 끊으면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지금 영어 책은 필요하지도 않고 있다고 해도 볼 시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의 목소리가 참 애처롭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이제 곧 울듯한 절박한 목소리였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청년 실업이나 취업경쟁률에 대해서 보았던 후라 제 마음에도 이 자매가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영어 책을 2년 동안(그것도 기본이 3년인데 연수생에게는 2년 계약도 가능하다고 해서) 70여 만원이 드는 것을 계약하고 말았습니다. 제 마음은 오직 하나,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그 자매가 힘과 용기를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은 다 말씀은 못 드리지만 그후 그 자매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계속 아내가 전화해도 전혀 전화를 안 받았었고 소비자 규정상 7일 이내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자매가 조금만 더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아내도 취소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 자매보다 회사만 좋은 일 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영어 책이 아니면 아이들 책으로 바꿔도 된다고 했는데 보내준 유인물에는 쓸만한 책도 없었고 우리 형편으로는 너무 버거운 것이라고 해서 취소 요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제가 카드로 계약하자마자 바로 사원증이 나왔다고 기뻐했던 그 자매에게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입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은 했는데 오히려 그 자매에게 실망과 상처를 준 것 같아 제가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마저 제 마음을 알고 처음에 동의해 준 아내가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이런 제 아내가 곧 아이를 출산합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자매와 그 선교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 아픈 이야기 (0) | 2003.11.28 |
---|---|
한 영혼을 실족케 하는 죄 (0) | 2003.11.07 |
큰 교회와 작은 교회 (0) | 2003.10.11 |
생명 보존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사역 (0) | 2003.10.11 |
교회 안의 부자와 가난한 자 (0) | 2003.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