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것인가, 아니면 내 말을 성경을 통해 말하고 싶은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듣고자 하는 자인가, 아니면 말하고자 하는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 길을 열어주지만 자기 자신의 욕심과 소망 사항을 말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문을 잘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미 자기 자신의 선입견과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성경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보고자 하느냐에 따라 다 제 각각의 해석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본문을 두고서도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 반대의 해석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좋은 책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책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혁명과 전쟁을 하나님의 뜻으로 합리화 시키고 상상할 수 없는 폭력과 살인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지르게 만든 것도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만큼 수많은 민중들을 흥분하게 만들고 목숨까지 서슴지 않고 내어놓을 정도로 철저하게 한 사람의 소중한 인생을 노략질하는 좋은 명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어떤 특정한 단체나 민족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그 어떤 이념과 사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경과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겠지만 대부분은 시대착오적이고 자가당착적인 오류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쉽게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단정하거나 선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촛불시위나 진보와 보수 논쟁처럼 잘못하면 우리 기독교와 교회가 영 엉뚱한 일에 휘말려 어리석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진리와 윤리의 문제입니다. 전도의 문이 닫히거나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놓치지나 않을까 다른 종교와 똑같이 눈치 볼 것이 아니라 소신 있게 행하여야 합니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 일에 무관심하거나 세상을 포기해서도 안 되겠지만 세상 일에 너무 깊이 휘말려 들어가서 교회 본연의 위치와 책임을 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경찰이 아니라 군대가 나서면 문제가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나서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고 교회가 자주 나서서는 안 되겠지만 교회가 나설 때는 제일 마지막 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동일한 문제 상황을 두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 아니라 교회 만이 할 수 있는 믿음의 방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방법이라는 것이 한 가지 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해석의 다양성이 있고 믿음을 표현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성경 해석이 정답이고 내가 만난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독선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만나주십니다. 여러 모양의 헌신과 믿음 중 하나만이 아니라 이도 저도 다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내가 다 아는 듯이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신앙도 인정하고 오히려 내게 없는 좋은 점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편견과 고집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만큼 신앙생활은 고립되고 가난하고 빈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